경제·정치사 '큰 발자국' 김용환 전 재무장관 별세

입력 2017-04-07 20:01   수정 2017-04-08 06:38

[ 이상열 기자 ] 1970년 이후 한국 사회가 맞은 두 번의 외환위기를 넘긴 주역인 김용환 자유한국당 상임고문이 7일 별세했다. 향년 85세. 고인은 박정희 정부의 경제정책을 지휘한 정통 관료이자, 1997년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을 탄생시킨 주역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원로그룹 ‘7인회’의 좌장으로 2대에 걸쳐 박 전 대통령 부녀를 도왔다.

고인은 1932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고시에 합격한 뒤 재무부 요직을 거쳤다. 1973년 10월 발생한 오일쇼크 여파로 첫 외환위기가 왔다. 경제수석이었던 고인은 미국 은행에서 달러를 빌려와 위기를 수습했다.

두 번째 외환위기 극복도 그의 몫이었다. DJP 연합을 추진하던 1997년 여름, 금융시장의 흐름이 심상치 않다고 보고 최우석 전 삼성경제연구소장, 이헌재 전 재정경제부 장관 등을 불러 대책을 마련했다. 정권이양기 비상경제기구를 통해 수습하는 게 핵심이었다. 김대중(DJ) 대통령 당선 후 정권인수 과정에서 고인은 비상경제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외환위기 극복 주역인 이 전 장관을 DJ에게 소개한 것도 고인이다.

고도성장 과정에서도 족적은 뚜렷하다. 1972년 기업의 이자 부담을 크게 줄여준 ‘사채동결 조치’는 당시 재무부 차관이던 고인의 작품이다. 1974년부터 4년간 재무부 장관을 맡아 산업화를 주도했다. 1987년 신민주공화당에 입당, 정계에 진출했다. 이듬해 13대 총선에서 당선된 뒤 4선을 했다.

김종필(JP) 전 총리와 결별한 후 2002년 대선 때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선 후보를 도왔다.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을 돕는 ‘7인회’ 좌장으로 “최태민 일가를 멀리하라”는 등의 조언을 하다 사이가 멀어졌다. 이 전 장관은 고인에 대해 “내가 본 최고의 관료이자, 오직 국가의 미래만을 생각한 애국자였다”고 평가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이다. 장례는 4일장으로 치러진다.

이상열 기자 mustaf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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